- OCD JOURNAL vol.4 no.1
- 2013.03.27
창호란 창과 문의 총칭으로서
그 기원은 원시시대에 출입구를 바람과 비와 추위로부터의 보호와 동물과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건물 내에서 사람이나 물품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개구부를 문이라 고하며 ,채광과 통풍을 주로 하는 것을 창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옥의 창과
문을 창호라 하는데 아직도 그 개념이 남아 창을 창문이라 부른다. 창호는 기둥과 벽체와 함께 삼분중
중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중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중분이 인간이라면 창호는 인간의 눈으로 창호의 이름에서도 “눈곱재기
창”, “눈섭바라지”, “누꿉”등 눈에 비유한 것을 알 수
있다. 요한 부분이 눈이라 할 수 있는데 창호의 분절, 문양
그리고 배치는 건물입면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으며 눈가를 화장하는 듯이 문설주와 인방, 상방
등으로 문얼굴을 뚜렷이 하여 창호의 틀을 강조함은 아름다운 눈의 형상을 갖추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의 미는 선의 미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전통건축에 나타난 외적 조형미도 선적구성에
있다고 할 때 창호의 살 짜임새가 갖는 선적구성미는 지붕에 나타난 선, 처마의 서까래에 나타난 선, 기둥에 나타난 선과 노출된 나무결의 선과 어우러져 한국 전통건축의 뛰어난 조형미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건축의 건물의 정면 창호의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본 연구에서는 창살의 의장을 담고 있는 전통창호가 갖는 사상적 배경과 공간구성에서의 관련성 및 한국 전통창호의 특징과 종류를 시대를
대표하는 최상급의 건축이라 할 수 있는 궁궐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5대 궁궐의 도면, 현장사진, 관련 논문 등을 조사하여, 각 수집된 건물의 창호를 중심으로 궁궐문양(궁궐에 주로 쓰이는 띠살, 완자살,
정자살, 용자살, 빗살, 꽃살) 유형과 형태, 비례, 배치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하였다. 궁궐구조와 서열 궁궐의 공간구조는 내전, 외전, 동궁, 주거 공간, 후원, 궐내각사, 궁성문, 궐외각사로
분류된다. "내전"은 왕과 왕비의 공적
사적 활동 공간으로, 위치와 기능면에서 궁궐의 중심이 되며 크게 대전과 중궁전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경복궁의 교태전 / 창덕궁의 대조전 이다. "외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를 만나는 의식
연회 등 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있어 왕의 위엄을 드러내는 곳이다. "동궁"이란 세자를 지칭하는 말이면서 세자가 기거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외전과 내전, 동궁 주변에는 “주거공간”이 있어서 왕, 왕비, 세자 등 주요 인물들의 시중을 드는 내시, 궁녀, 노복, 군병들의
기거공간으로 되어있다. 후원은 궁궐의 북쪽에 조성되어 있는 왕실의 공원인데, 이곳은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다. 임금과 그 가족의 휴식기능을 하고 있는데 휴식외에 과거시험도 치르고, 왕이
직접 군사훈련도하고 조그마한 논을 만들어 친히 농사도 지어보는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궐내각사"는 지금까지의 공간이 왕실의 공간이라면 궐내각사는 신하들의 활동공간이다. 정규관리의 활동공간/군사기구/왕실시중과
궁궐관리기구 등이 있다. 한편, 경복궁의 광화문 남쪽 좌우에는
국가의 기간관서들이 위치한다. 이들은 궁궐 밖에 위치하기 때문에 궐외각사라 한다. 의정부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으로 구성된 정부
총 관리기관. 육조(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사헌부, 한성부, 등이 있다. 궁궐은 작은 도시이다. 이 안에는 다양한 신분이 기거를 한다. 왕부터 궁녀 노복까지 그들이 기거하는 건물도 나름대로 신분이 주어진다. 건물마다
그 이름의 끝자에는 서열이 있다. 건축 입면과 창호와의
관계 풍수상의 국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의 조화와 의미를 갖고 있다면 건물의 입면에 있어서도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부경에서 천,지,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인의
본체를 살펴, 지의 본체와 천의 본체가 하나이며 동일한 것으로 즉 천지인일체를 설명하고 있으며 천일, 지이, 인삼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3이라는 수로 조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건축에서도 집 지을터와 일으켜 세우는 기둥과 덮는
지붕의 3대 요소가 대웅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으며 또는 건축물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지붕은 하늘이요
아래 몸통은 땅, 그리고 처마 밑 용마루는 사람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는 유호의 “목경”을 인용한 부분에서 가옥을 돌보이상의 상분과 땅이상의 중분기단의 하분으로 삼분하여 구분하며
들보, 서까래, 기둥, 네모서까래 ,기단은 척도가 대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지붕부분과 기둥부분, 기단부분이 상분, 중분, 하분의 수직적인 삼분체계로 하늘, 인간, 땅의 의미를 가지며 또한 삼분의 수직체계는 각기 그에 해당하는
건축요소를 가질 뿐 아니라 척도로서 조화로운 비례를 가져야 한다는 입면구성의 원칙을 보여주고 있다. 창호는 기둥과 벽체와 함께 삼분중 중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중분이 인간이라면 창호는 인간의 눈으로 창호의 이름에서도 “눈곱재기
창”, “눈섭바라지”, “누꿉”등 눈에 비유한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이 눈이라 할 수 있는데 창호의 분절, 문양 그리고 배치는 건물입면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으며 눈가를 화장하는 듯이 문설주와 인방, 상방 등으로 문얼굴을 뚜렷이
하여 창호의 틀을 강조함은 아름다운 눈의 형상을 갖추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간구성에서의 창호 한국건축에서 있어서 건축과 주변의 자연환경이 너무나 유기적으로 잘 융합되어있기 때문에 자연환경과 분리된 전통건축을 생각할 수 없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는 으레 여기에 조화되는 건축을 연상하리만큼 건축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와 자연을 끌어들이려는 우리선조들의 자연관은 창호의 설치에도 있어서 잘나 타고 있다. 예로 경복궁의 경회루와 창덕궁의 부용정, 창경궁의 태극정, 남한산성의 침괴정의 창호는 들문을 이용하여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난간에 걸쳐 문이 들어지지 않을때는 궁창을
접어서까지 들어 올리도록 하였다. 이러한 문의 개방은 방이라도 창문의 개폐에 따라 외부의 넓은 공간으로
확대되어나가기 때문에 좁은 감을 주지 않고 확대되어 느끼는데 필요한 요소인 폐쇄감과 개방감을 동시에 지내도록 하고 있다. 또한 공간이 닫혀 있을 때에도 시각적으로 막혀도 빛과 소리가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므로 지각적으로는 개방되므로
좁은 감을 느끼지 않게된다. 창호의 유형 및 분석 한국의 양식건축인 목조건축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것은 구조체의 복잡성 떄문이며 장식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부재자체가 의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창호는 기능적인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었지만 그 자체가 의장적인 요소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창호가
벽면에 구성되기 위해 사용되는 구조적 요소인 인방의 다양한 구성방법이 하나의 의장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호의 기능적 유형 창호는 한옥에 사용된 창과 문을 총칭하는 용어다. 창호는 개폐형식, 살대의 형식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창호의 역할 유형 한국건축에서 창호는 건축입면형태에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빛이 창호지를 투과하면서
창살의 실루엣을 만들어 내어 은은한 정취를 만들어 내며 옥외에서는 창살의 의장적 형태가 건물의 피사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다. 특히나 창호의 역할은 창으로만 사용되는 것과 문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창으로 사용되는 것은 대표적으로 살창과 교창 들창으로 나눌 수 있으며 문으로 사용 할 수 있는 판장문, 장지문, 분합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쓰임도 다르다. 일단 표 3과 표 4에서
보게 되면 각각의 쓰임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창호의 문양으로 본
유형 한국의 창살은 매우 단순한 격살문양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상하로 중앙부에 1개소 또는 2개소의 비교적 커다란 공백의 중심을 두고 2개소의 비교적 커다란
공백의 중심을 두고 그 공백의 갓둘레에 말하면서 비반성인 살 구성을 이루어가는 모양을 하고 있어 복잡과 단순함이 조화된 여백의 미를 살린 문양이라
할 수 있다. 살의 문양은 표 5를 보게 되면 우선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창호의
문양은 띠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건물의 외관에 주로 설치되는데 띠살은 모양자체가 간결하면서
다른 창에 비해 단순미를 가지고 있다. 주로 쓰이는 건물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모든 건물에서 두루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자살과 완자살은 왕과 왕비, 대비, 후궁 등 왕실가족이나 업무 또는 거주하는 건물에 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과 덕수궁의 중전인 함령전에서 띠살을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궐도에서는
편전인 선정전이 완자살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띠살로 되어 있어 후에 변경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꽃살은 중심건물에만 사용되었다. 시대별로 보면 경복궁은 태조 4년 (1395)에 조선왕조 5대궁궐 가운데 최초로 창건 되었다. 창호를 보면 대부분은 완자살과 아자살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창덕궁은 태종 5년에 이궁으로 건립되었으며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 동궐이라고 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소실되어 선조말년에 창덕궁재건착수 1608년 주요 전각이 복원되었다. 창경궁은 (성종 15)1484년 당시 생존하였던 세 왕후(세조·덕종·예종의 비)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것이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전각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된 뒤에도 몇 차례의 화재가 있어, 그때마다 내전이 불탔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 후에 재건하였다. 이 시기에 오게 되면 띠살과 정자살을 주로 많이 사용 한다. 화려한
완자살과 아자살을 볼 수 없게 된다. 덕수궁은 원래는 경운궁으로 창건되었으며 선조가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뭉진하였다가 26년(1593) 10월에 환도했을 때 손실되면서 옛 월산대군가에 들어가 행궁을 삼게 되어 경운궁의 창궁되었다. 띠살이 주로 이루어지지만 중요시설에는 아자살과 완자살이 보여진다. 경희궁은 원래 조선 인조의 생부인 원종의 잠저가 있던 곳이다. 1616년(광해군8) 건립 당시에는 경덕궁이라 하였으나 1760년 (영조36)에
경희궁이라고 개칭하였다. 띠살이 주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건축물은 규모와 높이, 목조가구법 등 이용자의 위계에 따라 다르듯 살문양도 대체적으로 꽃살-완자살(아자살포함)-격자살-띠살의 순서로 그 건물의 위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시대적으로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점차 아자살과 정자살을 많이 사용하지
않게 되고 띠살과 정자살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창호디자인 우선, 재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창호는 대부분이
목조이고 창호지나 널이 주요한 면구성재이다. 창호의 용어는 있어도, 재질에
관한 용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알 수 있다. 창호재는 곧은결 무절재가 좋고 판재를 오히려
쓴다. 재종은 보통 잣나무와 소나무(육송)재 외에 고급 활엽수재를 쓰기도 한다. 또한 인방, 벽선, 흠대, 창문선
등은 비교적 단면이 작고 짧은 재도 많이 쓰이게 되므로 비교적 구하기 용이하여 체목으로 나머지 재에서 켜내 쓰기도 한다. 이러한 창호의 재료는 우선 주거 인근에서 쉽게 구해지는 나무가 첫 요건이 되며 비교적 잘라서 재목이 되는 것이
둘째 요건이다. 소나무가 여러모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바로 그런 요건들에 기인하며 또, 재질도 질겨서 효용에 적격이다. 배치 면에서는 기능 생활환경 품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 이다. 궁궐에서는 그중에서 품격을 가장 중요시하였고 따라서 창호에 배치에서도
종류와 설치여부가 결정되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벽체의 대부분이 창호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입면에서 창호의 배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창호의 기능은 채광과 통풍이 있는데
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구성과 창호의 배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창호의 배치를 보게 되면 띠살은
주로 정면에 사용되는 것을 볼 있다. 그리고 아자창이나 완자창은 외측에 사용되는 것은 드물며 내측에 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외측에 사용된 곳은 왕가나 높은 신분을 가진 인물이 귀거하거나 업무를 보는 건물일수록 완자창을 쓰이기는 하나
조선 말기에 들오면서는 완자나 정자살은 점차 궁궐에서는 볼 수 없게 된다. 문양에서의 창호의 비례 우리나라의 창은 종이와 나무로 되어있기 때문에 개인적인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우리선조들은 창호의 비례에서 창살과 창의 간격이 매우 좁게 하고 창살들은 복잡한 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선들이 매우 아름다운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개인의 생활과 미적으로 고려된 결과이다. 또한 입면구성에 있어서 일정한 비례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입면에 창호는 사람이주로 직접 생활하는 부분에 해당하므로 시각적으로
가장 많이 지각되어지고 인식되어진다. 따라서 창호의 형태와 크기는 건물의 벽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꽃살과 정자살, 숫대살, 귀갑살, 귀자살, 완자살, 용자살, 아자살, 띠살, 만살빗살 빗살을 위주로 비례를 조사하였다. 기본적인 창살문양에서의 창호비례는 전체 비례는 √2 반비례하며, 또한 문양은 전체적으로 1/3의 비례형태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입면도에서의 창호의
비례 궁궐건축에서 왕실의 중요한 공간일 수 록 칸의 크기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창호의 형태와 크기에서 수직적인높이는 건물의 품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궁궐건축은 평면에서부터 칸이라는 공간적, 시각적 모듈을 사용하고 있으며 입면에 있어서 기둥이
벽면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기둥의 수직부재와 기둥과 기둥사이를 연결하는 도리, 인방, 머름 등의 수평부재가 이루는 면의 모듈을 가지게 된다. 수평, 수직적 비례분석 한
칸에 대한 벽면과 창호의 너비의 수평적 비례는 2.8:4.4:2.8로 분석된다. 창호높이, 상인방위 도리하단까지의 수직적 비례는 2.8:4.4:2.8로 수평비례와 같게 나타나고 있다. 한칸너비 A'.한칸의 깊이 B.벽체높이 C.창호너비 C'.창호높이 D.툇마루높이 E.머름의
높이 F. 상인방에서 도리까지 높이 이처럼 창호의 비례가 가장 균형 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궁궐의 창호에서는 신분과 건물의 쓰임에 따라서 비례와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5. 결론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궁궐의창살의 형태와 비례를 연구하여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궁궐에 사용된 창호의 명칭변화 또는 형태변화는1656년 전후 1764년 전후 1834년 전후로 총 3가지 기점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1656년 기점에 나타나는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호나 판창은 등의 나무판으로 구성된
창호는 궁궐에서 나타나지 않지만 창호의 문양은 사 찰창호나 민가창호보다는 다양한 것을 알 수 있다. 2) 색깔이 있는 창호는 나타나지 않게
된다. 3) ‘만살’, ‘압살’ 등 궁궐에서 나타나지 않게 되면서 그 자리에 세 살 즉 띠살이 그 자리를 차 지하게 된다. 4) 만자 세 살 완자 도화 사살문양이
새롭게 나타는데 1636년 병자호란등이나 청나라와의 관
계와 영조의 개혁등 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둘째,
비례에서는 수평, 수직적 비례분석 한 칸에 대한 벽면과 창호의 너비의 수평적 비례는 2.8:4.4:2.8로 분석된다. 창호높이, 상인방위 도리하단까지의 수직적 비례는 2.8:4.4:2.8로 수평비례와
같게 나타나고 있다. 셋째, 조선시대의 창호는 한자표기나 이두표기로 되어있는데 지금까지의 창호조사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특히나 궁궐에서 나타난
창호이다. 19세기이후 이두명칭은 사라지고 한자표기창호만 나타난다. 한글표기인
현재의 창호 명칭을 19세기처럼 한번 창호의 명칭을 정리가 또한번 필요하다. 넷째,
예전에 창살을 이용한 디자인을 보면 전체적으로 완자살이나 정자살이나 꽃살 위주로 디자인하여 화려하나 의미와 비례 형태는 제 각각이라서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 이다. 특히나 패턴의 형태는 그 형태와 의미를 잘 알지 못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 파티션의 문제점을 예로 들을 수 있다. 이 논문은 현재의 디자이너들이 창살의
문양과 비례를 이용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초적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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