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1 디지털정보시대와 전통문화 디지털정보시대의
신속함은 세계인의 문화적 욕구를 부추기고 있다. 각기 다른 지역문화는 세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융합되기도 하고 또는 경이로움의 대상이 되어 직접 체험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문화는 소비의 대상이 되었으며, 산업과 경제 활성화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하였다. 문화 마케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식문화를 통해 세계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세계의 대도시 마다있는 이태리식당, 프랑스식당, 일본식당 등이 좋은 예이다.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기 위한 식당이라면 음식의 차별화 뿐 아니라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 전반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선도적인 문화마케팅을 이룰 수 있다. 디지털정보시대의
문화에 대한 요구는 앞선 문화에 대한 동질화와 지역별 차별화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주도권을 지닌 문화가 다른 문화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서구화가 곧 현대화라는 인식을 낳았고, 정보의
고속화와 함께 더욱 고조되어 서구문화의 동질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세계 시장 속에서 문화를 매개로한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각 문화의 아이덴티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가정과
공공장소, 제품과 시각매체 등 삶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각 나라 조형문화의 차별성은 전통문화에서 비롯된다. 어느 나라나 산업화 이전에는 주어진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지혜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전통문화를 이루어왔기
때문이다. 전통문화는 첨단기술과 복제로 대변되는 디지털정보시대의 메가트렌드와 차별화되는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 될 것이다. 1.2 동북아 문화 - 한국, 중국, 일본 세계 문화의
흐름은 근대 이후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과학이 크게 발달한 서구 사회가 중심이 되어 동서양 모두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를 취하게 되었다. 서양의 우수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는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문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신속한 정보 공유와 뛰어난 기술력 덕분에 세계는 날이 갈수록 서구적 사회구조와 공통된 문화적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판도는 최근 큰 변화를 이끌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한국의 초고속
산업발전, 그리고 중국의 개방정책에 따른 동북아 삼국의 경제 위상의 변화는 현재까지 이어져온 서구 중심의
세계문화 흐름의 판도를 변동시키고 있다. 또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정보화 시대는 동양의 특수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문화를 서양에 소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과학과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던 서구 사회에 반하여 자연과 인간, 감성적 사고를 강조하는 동양의 문화가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젠(Zen) 스타일, 오리엔탈리즘 등과 같은 다양한 동양적
이미지에 대한 동경과 유행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세계적으로 동북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볼 때, 삼국은
서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동질 문화권을 함께 발전시키고 보다 확고하고 더 나은 이미지로 세계 속에 각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한중일 전통생활에 담겨있는 지혜와 미의식이
반영된 각국의 조형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깊이있는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문화적
우수함이 국가 간의 우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동북아 지역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급속한 서구화로 인해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동양의 문화적 정체성을 바로잡고, 과거 전통사회에서부터 오랫동안 깊이 있게 발전되어 온
전통가치와 ‘멋’의 개념을 시대적 상황에 맞게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1.3 한중일의 조형문화 연구
방법 현재까지
이루어진 한중일 삼국에 관한 조형문화의 비교연구들을 살펴보면, 건축,
패션, 가구, 소품 등 한정된 분야에서 단편적인
대상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을 뿐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통합적인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같은
현상은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삼국간의 원활한 교류가 쉽지 않았고, 상대방 국가에 관한 자료를 접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한중일의
발전된 이미지 구축을 통한 바람직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정체된 현실적 상황과 한계를 극복하고 한중일
삼국간의 통합적이고 보편적인 조형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단편적인 연구결과들을 종합하여 보다 통합적인 관점을 이끌어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즉, 각국의 역사·문화적 배경과 전통 생활문화에 남아 있는 조형물을
비교 분석하여 미래 디자인문화의 아이덴티티를 이어 나가는데 기초 자료가 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삼국이 공통성을 지니면서도 차별화된 문화를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문화적 원천을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안점은 각 나라별 주어진 상황에서 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지혜의 비교이다. 즉,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의 고유한 생각의 방식과 이념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로는
한중일 삼국이 각자의 멋을 추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었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한중일
삼국이 가지는 전통적인 ‘멋’의 가치가 과학기술로 인해 획일화되고 개성을 잃은 인위적인 산물로 가득찬 현대 사회 속에서 더욱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주안점은 한중일 삼국이 지닌 조형성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즉, 지혜와 멋으로 인해 국가별로 상이하게 나타나는 결과물들이 국가별보여주는 일관성 있는 차별화된 특성을 말한다. 2. 한중일 삼국의 역사·문화적
배경 문화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며 인간이 자연에 대응하는 하나의 생활 방식이다. 한중일 삼국은 지리적으로는
동북아에 인접해 있으며 유교문화권, 한자문화권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삼국은 공통된 문화권을 공유하여, 흔히 서양에서는 한중일이 단일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문화,
한지를 사용하는 문화 등 이들 삼국의 공통된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삼국은
각자의 환경과 기질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문화를 형성하면서 발전하여 왔다. 이는 삼국의 자연 환경과 역사적
배경에 기인한 사고방식과 대응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2.1 지리적 배경 중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대륙을 가진 나라로 산지, 고원, 분지, 평야 등 다양한 지형과 기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고 있으며 거대한 대륙
조건은 인위적이며 광대지향적인 조형성을 발전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인 반도이며 삼국 중 국토가 가장 작고 남북한이 나뉘어 있으며, 남한의 면적은 한반도의 절반
정도로 인구밀도 또한 삼국 중 가장 높다. 한국은 산지 비율이 삼국 중 가장 높으며 산의 지형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연주의적 조형성의 배경이 되었다. 일본은
혼슈(本州), 홋카이도(北海道), 규슈(九州), 시코쿠(九国) 4개의 주된 섬 외에도
4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은 섬의 특성상 사계절 내내 온난하며 습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며 따라서 난방 보다는 습도 유지에 적합한 다다미와 같은 독특한 주거 환경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삼국의
상이한 지리적 환경은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는 가운데서도 독특한 조형성을 구축하는 배경이 되었고, 자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별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어왔다. 2.2 역사적 배경 한국은 B.C. 2333년
고조선으로 개국한 국가이며, 중국은 B.C. 2100년 하왕조로
개국 하였고, 일본은 B.C. 660년경 야마토 정권의 성립과
함께 건국이 이루어졌다. 개국 이후 삼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특성으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지만
영역 확장을 목적으로 한 침입, 강점 등의 역사를 겪기도 하였다. 중국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漢)족과 55개 소수민족의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은 야마토족과
원주민인 아누이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국은 한(韓)민족의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국은
오랫동안 공통적인 한자문화권을 이루어 왔다. 한국은 1443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고유의 문자를 갖게 되어 현재는 한자의 사용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나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를 표기하고 있다. 일본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한자의 형태를 일부 생략하거나 변형하여 나온 글자이며 현재도 한자를 병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삼국은 한자로 서예라는 예술 장르를 공통적으로 형성하였고, 문서에는
서양의 사인 대신에 도장을 사용하는 등 현재도 한자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2.3
사상적
배경 2.3.1 삼국의 공통된 사상 한중일
삼국의 발전과정에서 공유된 주요 이념은 유가(儒家)사상과
도가(道家)사상이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계관으로 음양오행, 천인합일, 풍수사상 등을 들 수 있다. 유가사상은
공자를 시작으로 발전해 온 중국의 대표적인 철학사상으로, 그 중심을 효(孝)와 예(禮)에 둔다. 효를 중시하는 유가사상은 조상숭배와 가족중심을 강조하는
경향을 형성하였고, 예를 중시하는 사상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이는 서양에서 볼 때 동양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예를 중시하는 성향으로 현재에도 머리를 숙여하는 인사법은 독특한 예의범절로 남아 있다. 유가사상은
남녀유별, 장유유서 등 인간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남녀노소, 사회적
신분과 계급 등에 따라 공간에서도 위계질서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유가사상이
효와 예 등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상이라면, 도가사상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사상이다. 도가사상은 무(無)의
도(道)를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덕목으로 삼았으며 세속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초월하여 절대 경지에 이르는 자기 완성의 덕목을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불필요한 인공적 행위를 삼가고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공간에서 무위는 비움의 개념으로 나타났다. 인간을
우주와 자연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도가사상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자연관을 형성하였으며, 나아가
우주를 음양의 원리로 보는 음양사상과 천인합일, 그리고 풍수사상으로 발전되었다. 음양오행은
인간과 우주사이의 관계를 음과 양의 원리에 따라 보는 철학적 사상으로 우주에는 오행에 해당하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오성이 있고, 해와 달에 해당하는 음양이 있으며 우주의 만물은 이러한 기운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음양오행사상에 따라 삼국은 오방색을 사용하였는데 각 방위에 해당하는 색을 각각 동청(東靑), 서백(西白), 남적(南赤), 북흑(北黑), 중황(中黃)으로 하였다. 천인합일은
우주와 사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합일체라는 사상으로 한중일 삼국에서의 뿌리 깊은 사상적인 기반이 되었다. 유학의
삼경 중 하나인『주역』에서는 우주의 원리를 태극, 음양, 팔괘의
철학적 의미와 천인합일 사상으로 다루는데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은 우주의 자연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았다. 땅에서의
조화를 추구하는 풍수(風水)사상은 바람과 물의 기(氣)를 통한 땅과 공간에 대한 해석으로 천지에 인간의 위치가 조화를
이루어야 도가 생기고 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이다. 풍수사상은 궁궐터와 같은 양택지와 음택지에 해당하는
묘자리 선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았고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2.3.2 한중일 삼국의 사상적
차이 중국의
역사는 끊임없이 형이하학적 기질의 서부족들과 형이상학적 기질의 동부족이 교대로 주도권을 가지며 교체되어 왔다. 그
결과 중국인의 사고는 정신적 측면과 물질적 측면을 아울러 가지는 중용적 성격을 가진다. 중국은 일찍이
춘추전국시대에 사상의 황금기를 맞이하였으며, 공자, 맹자, 순자 등에 의해 인·의·예·지·신의 덕목을 강조하는 유가사상을 정립하였다. 이처럼
주변 국가들보다 일찍 사상적 발전을 이룬 중국은 자국의 문화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중화사상을 뿌리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오방색 중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은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색으로 황제의 의복과 황궁의 기와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중화사상은 광활한 대륙조건과 더불어 주변을 압도하는 광대지향적인 조형의식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한국 사상의
원류는 단군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하늘(天)의 아들인 환웅이 땅(地)의
웅녀와 결혼해 단군을 낳는다는 삼태극의 천지인 사상이 반영되어 한국 사상의 원형이 되었다. 조선조에
들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천인합일 사상의 주자학은 하늘과 사람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천인무간(天人無間)의 사상을 형성하였다. 이처럼 한국은 건국 신화의 천지인 사상이 근원이
되어 천인무간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을 중시하는 천인합일 사상을 발전시켰다. 일본의
건국 신화는 신의 자손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섬들을 낳아 가면서 일본열도를 형성하는 과정이 담겨 있어, 신의
보호를 받는다는 신국사상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국사상을 기반으로 한 일본중심주의는
현재까지도 천황(天皇)을 절대적 존재로 섬기는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日本)이라는
명칭은 태양을 국호의 중심개념에 놓는 데 목적이 있으며, 태양신의 아들이 통치하는 국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유가사상 중 특히 예(禮)를 중시하는 일본은 존대어가 발전하였으며 위계질서가 강조되었다. 또한 순자의 천인분리사상을 따르면서 인간이 스스로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일본의 생활공간에서 자연이 인간보다 작게 표현되는 축소지향적 조형의식이 형성되었다. 3. 생활 속에 나타난 한중일
조형문화 비교 한중일
삼국의 생활문화를 발전시켜온 각국의 지혜로움, 멋, 고유한
독자성이 담긴 전통 의식주 생활문화의 사례를 통해 삼국이 지닌 전통 디자인문화의 구체적인 차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3.1 의생활 문화 비교 3.1.1 의복 한중일의
전통 의복 중 조형적 표현이 비교적 잘 나타난 여성복식을 살펴보면 17~18세기에 중국에서는 치파오, 한국에서는 한복, 일본에서는 기모노가 전통 의복으로 완성되었다. 치파오는
만주족 지배층의 복식과 한족의 고유복식이 합쳐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목의 깃이 올라가고 직선적인 원피스
형태인데 ‘장포’라 불리는 발목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천에 다양하고 화려한 문양을 수놓았다. 목에 사선으로
다섯 개의 매듭단추가 있고, 품이 원래는 직선적이고 헐렁하던 것이 시대에 따라서 좁아지고 넓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몸에 달라붙는 형태가 되었다. 한복은 한국 고유의 의복이 몽골의 호복과 중국 한족의 의복에
영향을 받아 정착된 것으로, 길이가 짧고 고름이 달린 저고리와, 통이
넓고 윗부분에 주름이 들어간 치마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몸에 의복이 달라붙지 않고 품이
넉넉하여 중국과 일본에 비해 체형이 드러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중국과 일본은 바탕 문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데 반해, 한복은 의복 전체에 문양을 사용하지 않고 치마 끝단이나 고름 등 극히 부분적인 곳에만
문양을 사용하여 단순한 느낌을 준다. 기모노는
남방의 개방적 문화 위에 일본 기후와 일본인의 체형을 고려하여 독자적으로 발전한 의복으로, ‘나가기’라
불리는 평면적인 원피스를 몸에 꼭 맞게 여며 두른 후 끈(히모)과
허리띠(오비)로 고정시킨다.
몸의 윤곽선이 잘 드러나고, 치마폭이 매우 좁으며 직물에 중국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색채와
문양을 수놓아 장식한다. 옷감을 재단 할 때 평면적으로 재단 후 착용 시에 몸에 꼭 맞도록 죄어서 입는
것이 특징이다([표3-1]참조). 중국의 치파오는 원래
직선적이고 헐렁하던 박스형에서 몸에 꼭 달라붙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현대 패션에서도 잘 활용되고 있고, 일본의
여름용 기모노인 유카타는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현대인들의 잠옷 또는 평상복으로 사용되고 있다. 치파오나
기모노는 이미 세계인들의 인지도가 높은데 비해, 한복은 최근에 와서야 국제 무대에 소개되어 그 독자성이
알려지고 있다. 3.1.2 신발 전통의복과
함께 착용되었던 전통 신발과 버선을 비교하면, 중국은 목저혜와 버선,
한국은 당혜와 버선, 일본은 조리/게다와 다비를
들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버선을 신고 목저혜라 불리는 신발을 착용하는데, 발을 작게 만드는 전족이 유행하면서 천으로 발을
꽉 죄기도 하였다. 신발 바닥의 굽이 중앙을 향해 양쪽에서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로 높이가 9cm 이상 높았는데, 나무로 신발을 제작한 후 천을 씌워서 착용하였다. 버선의 소재로는 비단, 가죽, 면
등이 사용되었다. 한국 역시 버선을 신고
당혜라 불리는 신발을 착용하였다. 당혜는 안에는 푹신한 감을 대고 겉은 비단으로 싼 가죽신으로, 중국과 달리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이 없다. 버선은 끝이 뾰족하게
위로 치켜 올라가고 버선목의 바느질눈 방향에 따라 좌우의 구분이 있다. 일본은 조리와 게다라고 불리는 두 가지의 신발이 있는데, 조리는 다비라고 불리는 버선을 신고 착용하였고, 게다는 일본 나막신으로
맨발로 여름에 착용하였다. 조리는 굽이 높을수록 예장용으로 사용되었고,
게다는 두 개의 나무굽이 있고 ‘ㅅ’자 모양의 끈이 달려 있다. 다비라고 불리는 버선은
엄지와 다른 발가락 사이가 갈라진 형태로 조리를 신기 편하도록 제작되었고, 발목 부분에 금속제의 고리가
붙어 있다([표3-2]참조). 3.1.3 장신구 한중일 삼국의 전통 의복과 함께 사용되었던 머리장식을 비교하면
중국에는 양파두, 한국에는 족두리, 일본에는 쯔노카쿠시를
들 수 있다. 중국의 양파두라는 머리 장식은 막대를 꽂아서 양옆으로 평평하게 머리카락을 말아 올린 후
보석과 꽃으로 장식하는 것으로, 후에는 머리틀을 제작하 여 모자처럼
착용하였다. 한국의 족두리는 의례용으로 솜을 채워 비단조각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아래는 둥근 원통형이고 위는 평평하게 생겼으며, 그 위에 각종 보석이나
꽃으로 장식하였다. 일본의 쯔노카쿠시(角隱し)는 전통 혼례식 때 신부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흰색 천으로 만든 모자 장식이다.
중국의 양파두와 일본의 쯔노카쿠시는 머리를 크게 확장하여 장식하는 반면 한국의 족두리는 작고 단아하다. 삼국의
의복장식으로는 중국의 운견, 한국의 노리개, 일본의 오비마쿠라, 오비지메·오비도메 등이 있다. 중국의 운견은 한족의 전통 의례로, 구름문양으로 장식하여 어깨 위에 걸쳐 입었다. 한국의 노리개는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 허리에 차는 장신구로,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 가지 색상의 삼작노리개가 유행하였다. 일본의 오비마쿠라는 오비 뒷부분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덧대는 볼록하게 생긴 장식을 말하고, 오비지메와 오비도메는 오비 위에 둘러서 묶는 끈장식을 말한다. 의복장식
역시 중국은 어깨에, 일본은 허리에 화려한 포인트를 주는 것과 달리 한국의 노리개는 작고 소박한 장식임을
알 수 있다. 삼국 의상의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와 지혜라기보다 미의식과 조형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색채와
장식문양이 화려한 중국·일본의 의상과, 단색의 조화감과 함께 치마저고리로 나뉜 한복의 비례미가 차별화를
이룬다. 삼국의 의생활 비교를 통해 중국은 화려하고 과장된, 한국은
단아하고 소박한, 일본은 짜임새 있는 우아함의 멋을 추구한 것을 알 수 있다. 3.2
식생활
문화 비교 3.2.1 식기와 상차림 한중일
삼국의 전통 식기 중 주식인 밥을 담는 그릇을 비교하면, 중국은 도자기와 은기를, 한국은 도자기와 유기그릇을, 일본은 도자기와 목칠기를 들 수 있다. 중국의 밥그릇은 화려한
그림을 그려 넣거나 복을 기원하는 글을 새겨 넣으며, 요리를 밥 위에 얹어서 먹기 때문에 그릇의 위쪽이
넓은 형태를 가진다. 한국은 밥을 소담스럽게 담기 위해 아래 부분이 불룩한 것이 특징이며, 사기 그릇 외에 유기그릇을 사용하였다. 일본은 식기를 손에 들고
밥을 먹기 때문에 크기가 작고 손에 쥐기 편하도록 아래로 갈수록 좁고 바닥에 높은 굽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입을 대고 국을 마시기 때문에 그릇 두께가 매우 얇다. 상차림의 경우 한국과 일본은 모두 독상을 기본으로 하여 좌식의
낮은 상에 개인별로 밥과 국, 반찬, 요리 등을 차려서 먹는다. 한국은 반찬을 크기가 다른 개별 그릇에 담아 먹지만, 일본은 주식과
반찬류를 구분하여 한 접시 위에 반찬을 함께 담는다. 이에 반해 중국은 밥과 국그릇은 개인별로 차리되
주요리는 큰 접시에 담아 가운데에 놓고 함께 나눠 먹는다. 상차림에
있어 중국은 대륙적 특성이 나타나며, 일본은 개인의 단위형식을 중시한 정교함이 나타난다. 한국은 반찬에 따라 크고 작은 그릇들이 많이 놓여 풍성함과 다양성을 보인다. 3.2.2 수저 중국의
경우 숟가락은 탕을 먹을 때만 사용하고, 대부분의 음식은 젓가락을 사용하여 식사를 한다. 중국의 젓가락은 대나무로 만드는데 길이가 가장 길고 두꺼우며 끝이 뭉툭하다. 한국의 경우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포함하며 모든 식사는
수저를 사용하는데, 은기, 유기 등의 금속재로 제작된 것이
큰 특징이다. 금속재의 젓가락은 목재보다 무겁고 미끄러워서 매우 섬세한 젓가락질이 요구되며, 수저를 한 세트로 사용하여 기능성을 높였다. 이미지출처: 정동주(2008), 다관에 담긴 한·중·일의 차문화사, 한길사 일본의 젓가락은 모든 음식을 먹을 때 사용되는데, 국물을 마실 때에도 젓가락으로 휘저어서 입을 그릇에 대고 마신다. 섬
문화의 특성상 생선을 자주 먹기 때문에 가시를 바르는 등의 섬세한 젓가락질이 요구되어 끝이 가늘고 뽀족한 형태가 특징이다. 일본의 젓가락은 대나무 또는 버드나무로 제작한 후 옻칠로 매끄럽게 마감하여 사용하였다([표3-5] 참조). 3.2.3 다기 중국의
다기인 자사호는 소박하고 검소함을 추구하는 문인을 중심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유약을 바르지 않고 흙색의
사질토를 구운 후 표면 장식을 하지 않았는데, 차향 유지와 보온을 위해 몸통 벽이 두꺼우며 뚜껑이 아구리에
꽉 끼도록 제작되었다. 손잡이는 고리형이고 사질토의 자연색 그대로인 어두운 갈색을 띤다. 한국의
분청다관은 풍류를 즐기는 문인과 승려 계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는데, 태토 위에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후 재료의 투박한 질감을 살렸다. 분청다관은 몸통과 부리가 모두 아래로 내려갈수록 배가 불룩해지는 안정감
있는 형태를 가지고, 손잡이는 중국과 같이 고리형으로 되어 있다. 색채는
백토니를 분장하여 흰색을 띤다. 일본의
규스는 사교를 중시하였던 무사 계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는데, 점토를 구워낸 후 유약으로 마감하거나 정교하고
화려한 옻칠과 순금장식을 하였다. 뚜껑은 아구리에서 아래로 움푹 들어간 형태로, 손잡이는 고리가 아닌 자루형으로 독자적인 형태를 가진다. 부리 역시
곡선적인 형태를 가지는 중국·한국과 달리 일직선으로 짧고 곧게 뻗어 있다([표3-6]참조). 식생활
문화에서는 각 나라별로 다양한 지혜와 멋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의 기름진 음식을 가운데 놓고 나누어
먹는 식습관은 뜨거운 음식이 식지 않도록 하는 지혜로운 방법이기도 하다. 은기나 유기로 만든 한국의
수저는 삼국 중 가장 발달한 멋이 있는 도구로 꼽힌다. 일본의 자루가 달린 다기 또한 오랜 고리의 형태에서
혁신적인 새로운 손잡이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3.3